2026년에 발동된 서킷브레이커 9번 중 국민연금이 매수가 아니라 매도를 선택한 것이 5번이다.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제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매수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연초 대비 평가이익이 314조 원에서 95조 원으로 219조 원이 줄어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킷브레이커가 걸리면 국민연금이 사줬다. 1998년 12월 도입 이후 2025년까지 여섯 번 발동됐고, 여섯 번 모두 국민연금이 기금을 넣어 시장을 진정시켰다. 2026년은 다르다. 올해 발동된 서킷브레이커 가운데 국민연금이 매수가 아니라 매도를 선택한 것이 다섯 번이다.
거래소, 코스피 급락에 서킷브레이커 발동 (코리아타임스, 2026-07-29)거래소는 7월 29일 낮 12시 31분, 코스피가 전날보다 8% 넘게 떨어져 20분 동안 거래를 멈췄다고 밝혔다. 이 발동을 거래소는 올해 여덟 번째로 셌다. 원문이 센 아홉 번과는 셈법이 다른데, 코스닥 발동을 함께 세는지에서 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전체 기금에서 국내주식이 차지할 비중을 미리 정해 두고, 주가가 올라 그 비중을 넘으면 팔아서 되돌린다. 이것이 리밸런싱이다. 중요한 것은 파는 쪽이 아니라 그다음이다. 상승장에서 덜어 낸 돈이 곧 폭락장에서 살 현금이 된다. 쉽게 말해 장바구니의 칸 비율을 정해 두고 넘치는 칸을 덜어 내는 것인데, 덜어 낸 것이 다음에 살 돈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5월 28일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올렸다. 상승장마다 기계적으로 쏟아지는 매도 물량이 시장을 누른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정이었다.
국민연금,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20.8%로 상향 (서울경제 영문판, 2026-05-28)서울경제 영문판은 이 결정 당시 실제 국내주식 비중이 약 30%였다고 전했다. 목표를 5.9%포인트 올려도 실제 비중은 그 위에 9%포인트 넘게 떠 있었다는 뜻이다. 한도를 넓혀 준 뒤에도 국민연금은 계속 파는 쪽이었다.
한도를 5.9%포인트 넓힌 것은 상승장의 강제 매도를 줄이려는 조정이었다. 매도를 줄인다는 것은 폭락장에서 쓸 현금을 덜 쌓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문이 지적한 매수 여력 부족은 운용 판단과 별개로 이 규칙 변경과 같은 뿌리를 갖는다.
2026-07-30 조회 ·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2026-05-28 결정, 서울경제 영문판·KED글로벌 보도 인용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제때 못 해 실기했다. 사줄 돈을 스스로 없앤 운용의 실패다.
상승장의 강제 매도를 줄이려 5월에 넓힌 비중 구간이, 폭락장에서 살 현금까지 같이 줄였다.
같은 사실을 두고 운용의 실기로 볼지, 시장을 돕겠다고 바꾼 규칙의 뒷면으로 볼지가 갈린다.
넓어진 비중 구간이 국민연금의 리밸런싱을 무디게 했다 (KED글로벌, 2026-07-29)KED글로벌은 상승장의 강제 매도를 줄이려고 넓힌 비중 구간이 폭락장에서 공격적으로 사들일 능력까지 무디게 만들었다고 짚었다. 7월 28일 코스피가 10.84% 떨어져 6,023.66으로 마감한 날에도 국민연금의 매수는 소액이었다는 대목이 같은 기사에 있다.
6월 19일 코스피 9,100에서 국민연금의 연초 대비 평가이익은 314조 원이었다. 코스피가 5,663으로 마감한 7월 29일 기준으로는 95조 원이다. '평가이익'은 아직 팔지 않은 자산의 값이 오른 만큼을 장부에 적어 둔 금액이다. 팔아서 손에 쥔 돈이 아니라, 팔면 그만큼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래서 값이 되돌아가면 장부에서 같이 지워진다. 원문의 계산으로는 연금이 바닥나는 시기를 1년 늦추는 데 49조 원이 든다. 314조 원은 6.4년, 95조 원은 1.9년에 해당한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7월 말에 국민연금이 다시 사기 시작한 것이 안전판의 복귀인지, 비중이 저절로 내려간 결과일 뿐인지. 7월 28일 1,160억 원, 7월 29일 3,380억 원은 6월 8일 480억 원과 7월 7일 290억 원보다 크게 늘어난 금액이다. 다만 2020년 3월 13일의 5,730억 원과 견주면 아직 작다. 다음 서킷브레이커에서 조 단위 매수가 나오면 한도가 실제로 풀린 것이고, 다시 수백억 원대로 돌아가면 이번 매수는 비중이 내려간 만큼 기계적으로 나온 물량이었던 셈이 된다. 국민연금이 시장의 안전판이 되는 것은 애초에 기금의 목표가 아니었다. 목표는 수익률이고, 안전판은 그것을 좇는 과정에 딸려 온 결과였다. 올해 그 결과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남는다.
채점 대기다음 코스피 서킷브레이커 발동일에 국민연금 순매수가 1조 원을 넘으면 한도가 실제로 풀린 것으로, 다시 수백억 원대면 비중 하락에 따른 기계적 매수로 채점한다.